
[서론: '믿음'과 '의심'의 시험대에 오르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단순한 공포 스릴러를 넘어, '계시록'이나 '밀양'이 던진 '믿음'이라는 질문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끔찍한 이유는, 우리가 '정의'를 응원하거나 '악당'을 욕할 틈도 주지 않고, 관객 스스로를 '의심의 덫' 속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본론 1: '문화적 편견'이 진실을 가릴 때]
'곡성'은 '일본인', '무당(일광)', '무명(여인)'이라는 세 명의 인물로 관객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우리는 처음, 외지인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인'을 악마로 의심합니다.
이것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던진 '문화적 편견'이라는 덫입니다. 영화는 이 직관이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우리 스스로 "나는 겉모습과 문화적 편견으로 인물을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합니다.
[본론 2: '의심'은 합리가 아닌, 감정적 파괴력]
주인공 종구(곽도원)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그의 실패는 '증거 부족'이 아니라, '의심'이라는 인간의 약점 때문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 무명은 "절대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종구는 딸을 향한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적 패닉'에 사로잡혀 논리적인 판단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관객은 깨닫습니다. 이 영화에서 '의심'은 합리적인 검토가 아니라, '악'보다 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인간의 감정적 반응임을 말입니다. 인간이 진실보다 의심을 더 쉽게 믿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잔인한 장면이었습니다.
[본론 3: 2025년, '현혹되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곡성'은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경고로 요약됩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쏟아지는 가짜 뉴스, SNS, 알고리즘 속에서 "현혹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더 무서운 질문을 던집니다.
이 영화가 두려운 이유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이의 목소리는 종종 너무 조용하기에, 우리는 더 큰 소리(악)를 믿고, 결과적으로 악을 선택하게 되는 현실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선택이 '악'을 강화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결론: '혼란'이 남긴 최고의 질문]
'곡성'은 '무섭다'를 넘어, '혼란스럽다'는 감상을 남기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판단'과 '믿음'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됩니다.
이 영화는 '신'과 '악마'의 싸움이 아니라,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길을 잃는, 가장 '인간적인' 고통에 대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