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cWIWhhk4fj4Pc5eOFsoK-Uv2TxZezhynQshwuV2Ixx0 '밀양' 후기: "내가 용서하기 전에, 신이 먼저 용서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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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후기: "내가 용서하기 전에, 신이 먼저 용서했다고?"

by livingcity 2025.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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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포스터

 

 

 

[서론: 구원이 아닌, '고통'의 한가운데로]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칸을 사로잡은 전도연의 명연기만으로 기억될 영화가 아닙니다. '계시록'이 '믿음의 광기'를, '악마를 보았다'가 '복수의 공허함'을 그렸다면, '밀양'은 그 모든 것의 정점에서 "신은 과연 나를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가장 뼈아픈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은 구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용서'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 앞에서 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었습니다.


[본론 1: '강한 척', 무너지기 직전의 방어기제]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남편을 잃고 아들과 함께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그녀가 "땅을 사러 왔다"며 도도하게 '잘 사는 척'했던 모습은, 사실 무너진 자신을 감추려는 '얇은 포장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녀의 '오만함'은 "강한 척 했던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는 방어기제였습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해보려 했던 그녀의 연약함은, 아들의 유괴라는 끔찍한 사건을 계기로 산산이 찢겨 나갑니다.


[본론 2: "누가 나의 고통보다 먼저 '용서'를 말하는가"]

이 영화의 가장 잔인한 순간은 범죄 장면이 아니라, 교도소 면회 장면입니다. 아들을 잃고 신에게 귀의한 '신애'가 '용서'를 결심하고 찾아간 그곳에서, 유괴범은 '평온한' 얼굴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이미 용서하셨어요."

'신애'는 이 한마디에 무너집니다. "나도 용서하지 못했는데, 신이 용서했다고?" 그것은 '신의 정의'가 '나의 고통'과 다를 수 있다는 끔찍한 공포이자, '믿음'이 주는 가장 큰 역설이었습니다. 그녀가 "내가 용서하기 전에, 신이 어떻게 먼저 용서하는가?"라고 절규하는 순간, 그녀의 믿음은 구원이 아닌 가장 큰 고통이 되어버립니다.


[본론 3: '밀양(密陽)', 거창한 구원이 아닌 '비밀스러운 햇빛']

영화는 결국 '구원받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신도, 진실도, 정의도 신애를 안아주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저 말없이 곁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 '김종찬(송강호)'이 있습니다. 영화는 거창한 구원 대신, 그저 마당 한구석에 비추는 '한 줌의 햇빛'을 보여주며 끝납니다.

이것이 바로 '밀양(密陽)', 즉 '비밀스러운 햇빛'의 의미입니다. 대놓고 비추지 않고, 구원의 이름을 걸치지도 않지만, 어디선가 아주 작게 비추고 있는 그 빛. 2025년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멀고 고통은 가깝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시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습니다.


[결론: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

'밀양'은 '믿음'과 '용서'에 대해 가장 정직하고도 아픈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세상은 정의롭지 않고 신은 침묵하지만, 그럼에도 그 '비밀스러운 햇빛' 아래서 우리는 묵묵히 살아갑니다. 이창동 감독과 두 배우가 완성한, 잊을 수 없는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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