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복수, 파국을 복제하는 순환 구조]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서막인 '복수는 나의 것'은 복수 그 자체보다, 복수를 부르는 사회 구조를 냉혹하게 고발하는 문제작입니다. 이 영화는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복수가 어떻게 유일한 '대안적 정의'로 작동하는가를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공포는 잔혹한 장면에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복수가 또 다른 이의 고통을 낳고, 그 고통이 다시 복수로 이어지는 '파국을 복제하는 순환 구조'에 있습니다.
[본론 1: 절대적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다]
이 영화는 동진(송강호)과 류(신하균) 중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구별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류는 비극적 상황에 몰린 '사회적 약자'이지만 유괴를 저지른 '가해자'이며, 동진은 '피해자'이지만 살인과 고문을 저지르는 '가해자'가 됩니다.
"누구도 처음부터 악하지 않았고, 모두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어떤 결과도 정의롭지 않다." 이 영화의 무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복수는 사적 정의 실현이 아니라, 비극을 복제하는 잔혹한 순환 구조였습니다.
[본론 2: '시스템의 공백'이 낳은 '무서운 합리성']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복수는 감정적인 폭발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스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무서운 합리성입니다.
류는 장기 밀매 사기를 당해도 법적으로 도움 받을 길이 없고, 동진은 딸을 잃어도 공적 보상은 전무합니다. 이처럼 사회안전망이 무력하거나 부재할 때, '복수'는 시스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안 없는 분노'이자 유일한 해결책처럼 작동합니다. 이 영화는 정당한 절차가 무너진 사회에서, 복수가 '개인을 괴물로 만드는 비극의 공식'임을 보여줍니다.
[본론 3: '침묵'이 전달하는 복수의 잔혹성]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감정적인 연민을 거부하고, 극도로 '건조하고 냉담한' 연출을 사용합니다. 이는 관객이 인물에 감정이입하여 복수를 정당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입니다.
결국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제목은, "정의도 도움도 받을 수 없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파괴적인 행위뿐"이라는 절망적인 선언입니다. 감독은 그 행위조차도 차갑게, 잔혹하게 보여줌으로써, 복수가 사람을 해방시키기는커녕 '파멸의 숙명'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결론: 왜 복수 외에는 방법이 없었는가?]
'복수는 나의 것'은 복수 그 자체보다, "왜 복수 외에는 방법이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시스템의 부재가 어떻게 개인을 비극의 연쇄 속으로 내모는지 고발하는, 냉소적이지만 뼈아픈 걸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