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ur Jerzy Filip 논문을 ‘독창성–방법–결과’로 해부하기

한 문장 핵심 요약
Filip은 스마트시티를 ‘기술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기술 인터페이스(technological interface)가 시민–도시공간–도시행정을 연결해 바텀업 계획의 가능성을 열 수 있는지 탐색한 연구로 제시하며, 그 결론은 “약속은 크지만, 제도와 권한 설계 없이는 무력해진다”로 수렴합니다.
[이 글은 이런 분들을 위한 정리입니다]
- 스마트시티를 ‘플랫폼/앱’이 아니라 의사결정 구조로 분석하고 싶은 연구자·학생
- 리빙랩·참여플랫폼이 왜 자주 ‘토큰주의’로 끝나는지 원인을 찾는 실무자
- “바텀업”이 구호가 아닌 권한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시민
도시와 삶의 구조를 연구하는 Livingcity입니다.
오늘은 Filip 논문을 요약하지 않고, 논문의 뼈대를 이루는 3가지—독창성(개념 틀), 방법(유형화·사례), 결과(약속과 회의론)—로만 정리합니다.
1. 독창성: ‘기술’이 아니라 ‘기술 인터페이스’를 본다
Filip의 핵심 기여는 ICT를 “도시 위에 얹는 기술”로 보지 않고, 도시계획의 ‘중간다리’(interface)로 개념화한 데 있습니다.
1-1. 기존 스마트시티 논의와의 차별점
- 기술/인프라 중심 담론은 “무엇을 설치했는가”를 묻는다
- 참여 담론은 종종 “참여가 있다/없다”를 말하는 데 그친다
- Filip은 한 단계 더 들어가 “참여가 작동하는 연결 구조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즉, 기술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앱이나 플랫폼이 아니라, 시민의 의사 표현 → 상호작용 → 집단적 요구 형성 → (가능하다면) 의사결정 영향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도시계획 안에 만드는 장치로 정의됩니다.
1-2. ‘바텀업’ 가능성의 재정의
Filip이 말하는 바텀업은 “의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시개발 과정 자체에 시민이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여기서 기술 인터페이스는 다음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합니다.
- 표현의 기술: 시민의 요구·가치를 ‘보이게’ 만들기(가시화)
- 조정의 기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같은 장’에서 다루기(협업·합의)
이 개념 틀 덕분에 논문은 “스마트시티=기술”에서 벗어나, 스마트시티=의사결정 인터페이스의 재구성으로 논의를 옮깁니다.
2. 방법: ‘유형화’로 정리하고 ‘사례’로 시험한다
Filip의 방법은 간단하지만 강합니다. (1) 기술 인터페이스의 작동 방식을 유형화하고, (2) 각 유형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례로 검토합니다.
2-1. 유형 1: 패러메트릭 플래닝(Parametric Planning)
정량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시뮬레이션/최적화/합의를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 장점: 복잡한 데이터를 다루며 선택지의 결과를 ‘계산 가능’하게 만든다
- 기대: 이해관계 조정을 ‘규칙과 지표’로 다루어 합의를 촉진한다
- 위험: “누가 규칙(모델)을 설계했는가?”가 불투명하면, 합의가 아니라 통제가 된다
논문이 제시하는 일부 사례(예: 합의 기계(consensus-machine)로 묘사되는 프로젝트)는 바텀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알고리즘이 ‘의사결정의 문지기’가 될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
2-2. 유형 2: 내러티브 플래닝(Narrative Planning)
정량 최적화보다, 참여자들이 도시의 질적 가치·비전·서사를 함께 구성하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 장점: 시민의 ‘상상력’과 ‘가치’(공정성, 정체성, 장소성)를 계획 언어로 끌어온다
- 기대: 합의의 출발점을 “지표”가 아니라 “공유된 이야기”로 만든다
- 위험: 서사는 강력하지만, 제도·예산·권한이 연결되지 않으면 ‘캠페인’으로 끝난다
2-3. 유형 3: 간접 플래닝(Indirect Planning)
공식 계획 절차 밖에서 시민의 행동 변화, 시장·문화적 흐름을 바꿔 결과적으로 계획에 영향을 주는 방식입니다. (예: DIY 플랫폼, civic hackers 등)
- 장점: 자발성과 창발성을 통해 ‘예상 밖의 혁신’을 만든다
- 기대: 제도보다 빠르게 문제를 드러내고, 대안을 실험한다
- 위험: 제도권 의사결정과 연결되지 않으면 ‘재미/교육/파일럿’에서 멈춘다
이 유형은 바텀업의 에너지를 가장 잘 보여주지만, 동시에 권한이 없는 바텀업이 얼마나 쉽게 무력화되는지도 보여줍니다.
3. 결과: ‘약속’과 ‘회의론’ 사이의 간극을 정면으로 말한다
Filip의 결론은 단순 낙관이 아닙니다. 그는 기술 인터페이스가 분명히 바텀업의 약속(promise)을 갖지만, 그 약속이 현실의 도시계획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술 바깥의 조건—특히 권한·제도·책임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3-1. 약속: 참여의 문을 넓히는 기능
- 시민이 이슈를 더 빨리 ‘발견’하고 ‘확산’하며 ‘조직’할 수 있다
- 도시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시각화·시뮬레이션하며 학습할 수 있다
- 창의적 제안이 낮은 비용으로 등장하고 시험될 수 있다
3-2. 한계: 비중립성·형식 참여·권한 장벽
- 기술의 비중립성: 인터페이스는 설계자의 규칙과 가치가 들어간다
- 양적 참여 vs 질적 영향: 참여 데이터는 모이지만, 결정은 바뀌지 않을 수 있다
- 권한과 제도: 급진적 바텀업은 제도권에서 ‘위험’으로 간주되어 봉쇄되기 쉽다
3-3. 논문의 핵심 역설: “합법이면 부분적이고, 급진적이면 무력하다”
Filip이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문장은 이 딜레마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인터페이스가 제도 안에서 합법적으로 영향력을 가지면 결국 “부분적 바텀업”이 된다
- 인터페이스가 제도를 넘어서는 급진적 바텀업이라면 도시계획 결정에서는 “힘이 없다(powerless)”
따라서 논문이 남기는 결론은 기술 찬가가 아니라, 바텀업이 성립하는 ‘조건’을 끝까지 묻는 구조 분석입니다.
Livingcity의 메모: 이 논문을 한국 스마트시티에 가져오면 무엇이 보일까
Filip을 한국 맥락에 적용할 때 핵심은 하나입니다.
“기술 인터페이스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권한의 회로를 만들었는가”입니다.
- 리빙랩/플랫폼이 있어도, 결과가 ‘의견 수렴’에서 멈추면 토큰주의가 된다
- 데이터가 모여도, 예산·규칙·운영권이 연결되지 않으면 ‘참여의 기록’만 남는다
- 바텀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앱이 아니라 결정 구조(권한·책임·감사)다
열린 질문으로 마무리하며
“기술 인터페이스는 시민의 목소리를 ‘수집’하는가,
아니면 시민의 권한을 ‘증식’시키는가?”
Filip 논문이 주는 선명한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바텀업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에 연결된 권한의 설계로 성립한다.
참고문헌
Artur Jerzy Filip. Technological Interface of the City – The Promise of a Real Bottom-Up Urban Planning?
ⓒ 2026. Livingcity. All rights reserved.
본 글은 연구 노트 기반의 논문 분석/비평입니다. 인용 시 반드시 출처(Livingcity 블로그)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