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영웅담'이 아닌 '지옥도'를 그리다]
박찬욱 감독 제작, 강동원, 박정민 주연의 넷플릭스 대작 '전,란'을 봤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배경 때문에 거대한 '전쟁 영웅담'을 기대했다면, 이 영화는 그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합니다.
이 영화는 '국가'가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춥니다. 박찬욱 특유의 스타일로 그려낸 '낭만 없는 지옥도' 속에서, '전쟁'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찌그러뜨리는지,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 전쟁'이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본론 1: 이 영화의 진짜 전쟁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전,란'의 진짜 전쟁은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천영(강동원)'과 '종려(박정민)'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벌어집니다.
주인과 노비였지만 친구였던 두 사람이, 시대의 격변 속에서 적으로 변해가는 과정. 이것은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과 전쟁을 해야 하는" 잔혹한 '감정의 파열' 그 자체였습니다.
후반부, 종려가 천영을 향해 말없이 총을 겨누는 장면은 숨이 막힐 정도의 무게를 던집니다. "그가 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내가 가장 아꼈던 사람이었기에." '전,란'은 '국가가 아닌, 감정이 무너지는 전쟁'이 무엇인지 이 두 사람의 관계 하나로 완벽히 그려냅니다.
[본론 2: 박찬욱의 시선, '아름답지 않아' 더 강렬하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제작 스타일은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무섭도록 차분하게 전달합니다. 피가 낭자한 전쟁터도, 인간의 광기도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직시합니다.
이 영화는 '전쟁이 어떻게 인간의 얼굴을 짐승처럼 찌그러뜨리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합니다. 안개 낀 산속의 매복 전투, 피로 범벅된 무표정한 얼굴의 클로즈업은, 아름답지 않지만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힘을 가집니다. 덕분에 관객은 감정적으로 끌려가면서도 거리를 유지하며 깊이 생각하게 되는 '이중적인 몰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론 3: "누가 옳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란'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다"라는 단순한 구도를 거부합니다. 무능한 왕(차승원), 생존을 위한 의병(김신록), 그리고 적으로 만난 두 주인공까지, 이들 모두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했던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전쟁은 개인의 윤리를 무력화시키는 폭력의 체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2025년의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본다면, "누가 옳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끝까지 버텼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 통찰이었습니다.
[결론: 가장 처절한, 그리고 가장 감정적인 전쟁]
'전,란'은 영웅담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당혹감을, 묵직한 드라마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찬사를 받을 영화입니다.
국가의 승리가 아닌, 한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박찬욱의 스타일로 그려낸, 가장 처절하고 가장 감정적인 전쟁의 기록입니다.